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테넷>은 시간의 ‘역행(Inversion)’이라는 혁신적 개념을 중심으로 구성된 독특한 서사 구조를 지닌 작품이다. 본 글에서는 테넷의 시간 역행 개념이 어떤 과학 이론에 기반했는지, 플롯 구성에서 시간선이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지를 분석하고, 주인공과 닐, 앤드레이 사토르 사이의 관계를 통해 시간의 순환성과 결정론을 전문가 시점에서 해석한다. 시간의 방향성이 서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다: 테넷의 개념적 출발점
2020년 개봉한 영화 ‘테넷(TENET)’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시간 실험 3부작(메멘토-인셉션-인터스텔라)의 정점이라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인버전(Inversion)’이라는 시간의 역방향 흐름을 핵심 개념으로 도입하며, 전통적인 플롯 구조를 완전히 전복시킨다. 놀란은 시간의 물리적, 감정적, 서사적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이를 첩보물 장르의 외피 속에 집어넣어 전혀 다른 차원의 서사를 구축해냈다. 테넷의 세계에서 시간은 단순히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지 않는다. 특정 물질이나 인물이 ‘인버트(Invert)’될 경우, 그들은 시간의 흐름을 반대로 체험한다. 이로 인해 영화 속 사건들은 관객이 익숙한 시간선과 충돌하며 혼란을 유발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감독이 의도한 서사의 핵심이다. 이번 글에서는 테넷이 설정한 시간 구조를 물리학적 개념과 플롯 구성의 차원에서 해석하고, 등장인물의 결정과 행동이 시간이라는 프레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상세히 분석하고자 한다.
인버전 시간 구조와 시간 역행의 물리학적 원리
영화 <테넷>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인버전’이다. 이는 엔트로피(무질서도)의 방향을 인위적으로 반전시켜, 물체 혹은 인간이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살아가게 만드는 기술이다. 이 개념은 제2법칙인 열역학 법칙에서 착안한 것으로, 자연계의 시간은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 즉 미래로 향하지만, 영화에서는 인공적으로 이 엔트로피의 방향을 되돌리는 장치를 설정했다. 인버전 상태에서는 세상과의 모든 상호작용이 역행한다. 숨쉬기조차 반대로 진행되며, 총알은 총구로 들어가고, 불은 얼음으로 변하며, 원인은 결과를 따라간다. 이로 인해 인버트된 인물이 정상 시간대를 살아가는 인물과 상호작용할 경우, 영화는 두 방향의 시간선이 동시에 맞물리는 구조를 갖는다. 놀란 감독은 이 복잡한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 중반 ‘턴스타일(turnstile)’이라는 장치를 등장시킨다. 이는 사람이나 사물을 인버전 상태로 전환시키는 장치로, 이야기 전개상 큰 분기점을 만든다. 주인공이 점차 이 구조를 이해하고, 인버전 상태에서 사건에 개입하면서 영화의 플롯은 복잡하지만 논리적으로 맞물리게 된다. 특히 중반 이후의 ‘공항 작전’, 클라이맥스의 ‘템포럴 핀서 작전(Temporal Pincer Movement)’ 등은 동일한 사건을 두 가지 시간선으로 바라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관객은 이 장면을 통해 시간의 상대성과 순환성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순환 구조와 시간의 철학적 질문
테넷은 단순한 액션영화가 아니라, 시간이라는 개념 그 자체에 대한 철학적 탐구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시간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사건에 휘말리지만, 점차 시간 역행의 메커니즘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이미 미래의 자신에 의해 설계된 미션을 실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는 곧 결정론(Determinism)에 대한 직접적 은유다. 가장 중요한 반전은 닐의 정체이다. 그는 시간 역행을 통해 과거의 주인공을 돕기 위해 미래에서 온 인물이며, 주인공이 닐을 미래에 처음 만나게 될 장면이 결국 영화의 엔딩이자 닐에게는 마지막이 된다. 이 구조는 운명은 되돌릴 수 없으며,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놀란의 서사적 철학을 드러낸다. 놀란은 이 영화에서 시간을 단순히 ‘선형적 흐름’이 아닌, 순환적이며 상호 작용하는 구조로 제시한다. 테넷의 구조는 ‘팔린드롬(Palindrome, 거꾸로 읽어도 같은 단어)’이라는 단어의 형식 자체를 닮았으며, 영화의 플롯 또한 앞과 뒤가 맞물리도록 설계되어 있다. 결국 테넷은 질문을 던진다. “만약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는가?” 주인공은 결말에서 “우리는 언제나 이 일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할 것이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발적 행동을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시간의 주체가 된다. 이 영화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관객에게 재정의하게 만든다. 단지 영화 한 편을 본 것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도 그 안에서 ‘시간을 경험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중 구조. 그것이 테넷의 정교한 미학이자, 놀란이 제시한 시간 개념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