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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 공포의 심리와 집단 불안

by 아이데일 2025. 6. 12.

『곡성』은 단순한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넘어서, 인간 내면의 공포와 사회 전반의 집단 불안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비극과,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무너져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이 영화는 한국 사회의 깊은 불안심리를 심도 있게 탐구한다.

믿음과 불신의 경계, 『곡성』이 드러낸 심리적 균열

『곡성』은 2016년 나홍진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한국형 미스터리 스릴러의 경계를 확장한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영화는 외지인의 등장과 마을에서 벌어지는 연쇄적인 의문사,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 증세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작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단순한 범죄나 귀신 이야기로 귀결되지 않는다. 마을 주민들의 의심, 공포, 집단 히스테리, 그리고 믿고 싶었던 진실에 대한 붕괴는 관객으로 하여금 본질적으로 인간이 얼마나 쉽게 공포에 잠식당할 수 있는지를 직시하게 만든다. 영화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설정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인 종구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혼란과 의심 속에서 진실을 찾도록 유도한다. 이는 곧 우리가 믿는 체계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공포는 유령이나 악마의 존재 때문이 아니라, 그 존재를 둘러싼 인간의 반응과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사회적 불안의 투영 – 외지인, 이방인에 대한 공포

『곡성』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 중 하나는 바로 외지인의 존재다. 그는 영화 내내 악의 축으로 오해받으며, 그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이상 현상들은 곧 그를 마을의 원인불명 재앙의 중심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영화는 끝까지 이 인물이 진짜 악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이 모호함은 한국 사회가 집단적으로 타인, 특히 '낯선 이'를 대할 때 가지는 불신과 혐오의 시선을 상징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방인의 존재에 대해 충분한 근거나 논리 없이 배척하고, 그의 주변에서 벌어진 현상을 기정사실화한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 사회에서 특정 소수자, 외국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도 맞닿아 있다. 인간은 모르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그 두려움은 이성보다 감정에 의해 훨씬 빠르게 확산된다. 영화는 이러한 감정의 확산 과정을 마치 전염병처럼 그려내며, 집단 공포가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실감 나게 보여준다. 또한 종구의 심리 상태를 중심으로 한 전개는 경찰이라는 이성의 상징조차도 감정에 휩싸여 판단력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는 곧 사회 전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성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곡성』이 남긴 질문 –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영화의 결말은 마치 악몽처럼 끝난다. 진실은 끝내 밝혀지지 않으며, 관객은 무엇이 진짜였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태로 극장을 나서게 된다. 이 미완성의 구조야말로 『곡성』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다. 우리는 언제나 진실을 원하지만, 실제로 진실은 하나가 아닐 수 있으며, 우리의 믿음과 감정이 만들어낸 허상일 수 있다는 점을 영화는 집요하게 강조한다. 종구가 선택한 신념은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이었고, 이는 딸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과연 누가 옳았고, 누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는 영화가 관객에게 직접 던지는 윤리적 딜레마다. 『곡성』은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믿고 있던 것들이 무너질 때 발생하는 심리적 붕괴, 사회적 해체에 대한 공포다. 우리가 서로를 의심하고 배척하며, 불안의 씨앗을 키워가는 그 자체가 진정한 공포임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따라서 『곡성』은 단지 무서운 영화가 아닌, 사회심리학적 거울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관객에게 깊은 사유를 강요하는 영화다. 이러한 점에서 『곡성』은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선 현대 사회의 불안 심리를 가장 날카롭게 해부한 작품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